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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
— 개역한글

의미

바울은 예수님의 초기 추종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그리스의 고린도라는 도시에 자신이 세운 교회에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육체 안에서 살면서도 그 너머의 영적 실재를 믿는 긴장감을 솔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몸 안에 거하는 것'은 곧 '주님과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는 절망적인 의미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던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를 아직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태도를 한결같은 담대함으로 묘사합니다.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때때로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저를 고백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그 조용한 확신을 제게도 주세요. 무모함이 아니라, 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데서 오는 평안함을 주세요. 주님이 저의 진정한 집이기에, 이 삶을 열린 손으로 붙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묵상

내세가 더 좋은 곳이라고 믿으면서도 평범한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이메일에 답하고, 교통 체증 속에 앉아 있는 것에는 묘한 이질감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이질감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이 땅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존재가 아무리 좋고 실제적이라 해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분의 온전한 임재와는 일종의 거리가 있다고요. 그가 '거한다'는 말에 사용한 단어에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님과 떨어져 있다'는 말과 짝지은 것이지요. 어딘가에 편안히 거하면서도 그곳이 최종 주소가 아님을 아는 것은 가능합니다. 여기에 초대가 있습니다. 육체 안에서, 평범한 일상과 어려움과 아름다움 속에서 온전히 살되, 이 주소를 영구적인 것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는지 알 때, 당신을 삼키려 하는 것들 — 얻지 못한 승진, 깨어진 관계, 새벽 3시에 잠을 깨운 건강 문제 — 여전히 아프지만, 마지막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여정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 걸맞게 걸어가세요.

토론 질문

1

바울이 '몸 안에 거하는 것'을 '주님과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표현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육체적 삶이 열등하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더 섬세한 의미를 전하고 있나요?

2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로부터 일시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일상생활을 경험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아니면 별로 영향이 없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이런 관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관계, 책임을 소홀히 하게 만들 위험이 있을까요? 여기서 온전히 살면서 동시에 저 너머에 속한다는 두 가지 진실을 어떻게 함께 붙들 수 있을까요?

4

이 구절이 죽어가는 친구 곁에 앉아 있는 방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건네는 말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5

만약 당신의 가장 깊은 집이 이 생 너머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오늘부터 걱정을 멈출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